목장교안

2025년 6월 1일 목장교안
2025-06-04 18:47:08
평촌새순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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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마음이 청결한 자는 복이 있나니  (마태복음 5장 1-8절)

                                                                                                                              2025년 6월 1일 주간목장교안

   이 부분에 대해 살펴볼 것은 세 가지다. 첫째는 “마음”, 둘째는 “마음이 청결하다”는 말, 그리고 세 번째는 “하나님을 볼 것”이라는 말, 이 세 가지다.

   1. 그러면 “마음”이라는 말부터 먼저 생각해 본다. 우리는 마음이라는 말을 자주 쓰지만, 마음이 무엇인지 생각해 보는 일은 별로 없다. 그렇다면 마음은 무엇일까? 찾아보면 사람마다 다 다르게 말하고 있다. 어떤 사람에게 마음은 단순히 생각이고, 어떤 사람에게 마음은 감정이다. 또 누군가는 마음을 “지정의 활동을 합한 말”이라고도 한다. 그렇다면 성경에서 마음은 어떤 뜻일까? 성경에서 마음은 그런 것들보다 훨씬 더 아래 있는 무엇이다. 마음은 그 사람의 존재와 인격의 좌소, 그 사람의 존재와 인격이 놓여 있는 토대다. 지성과 감성과 의지는 인격적 작용이지만 마음이라는 바탕 위에서 이루어지는 것이다. 마음이 잘못되어 있으면 생각도 나쁜 방향으로 생각한다. 많이 배워도 마음이 잘못되어 있으면 비열한 말과 행동이 나온다. 우리는 우리 주변에 정말 남들 부러워할 만한 학교를 나오고도 도덕적으로 아주 저열한 방식으로 말하고 생각하는 사람을 본다. 뭐가 잘못된 것일까? 마음이 잘못된 것이다. 지성인이 어떻게 그럴 수 있냐고 비난하지만, 그럴 수 있다. 지성이 객관적인 것이 아니라 마음 위에서 작용하기 때문이다. 마음이 어느 방향으로 기울어져 있느냐에 따라 지성도 그에 따라 작용한다. 반기독교적인 마음을 가진 사람에게 있어서 지성은 예수님을 안 믿어야 할 논리를 만들어내는 작용을 한다. 비록 좋은 학교를 나왔을 수도 있고, 더 많이 배웠을 수도 있지만, 그가 배운 모든 것은 반기독교 논리 구축에 동원된다. 
질문) 이 점에 대한 지금까지의 당신의 생각을 말해 보라! 당신은 지금껏 지성을 지나치게 신뢰해 오지 않았는가?

   2. 따라서 성경이 강조하는 바는 마음이다. 하지만 그렇다고 성경이 지성의 역할을 부정적으로 보거나 가볍게 본다는 말은 아니다. 오히려 성경은 지성을 중요하게 생각한다. 왜냐하면 우리는 지성을 사용해서 성경과 교리를 잘 이해해야 하고 그래야 이단을 분별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렇다고 지적 능력만 있으면 되는 것인가? 교리와 성경을 잘 이해하기만 하면 되는 것인가? 아니다. 그렇지 않다. 마음이 중요하다. 그 마음이 주님을 향해 열려 있어야 하고, 그 마음에 주님이 주님이어야 한다. 우리는 마음에 주님이 없이도 수많은 종교적 행위나 언어를 남발할 수 있다. 그래서 주님은 이렇게 말씀하셨다. “외식하는 자들아 이사야가 너희에게 대하여 잘 예언하였도다 일렀으되 이 백성이 입술로는 나를 존경하되 마음은 내게서 멀도다”(마 15:7-8). 실제 어떤 사람들의 경우에는 많은 책을 읽고 입만 열면 책들의 이름과 저자를 말하며 지성적인 것처럼 하지만, 실제로는 얼마나 더 악랄하고 골치 아픈 경우가 많은가? 그런데 그런 일은 교회 밖에만 있는 일이 아니다. 교회 안에도 마찬가지다. 교회 안에도 마음이 잘못된 사람들이 많이 있다. 그 마음이 열등감과 타인에 대한 적개심과 불만으로 가득한 채 종교 생활을 하는 사람들이 많다. 그런 사람들 중에는 사회나 학교에서의 열등감을 종교적으로 보상받으려는 사람들도 있다. 그런 사람이 예배도 더 열심히 참석하고 교리 공부도 많이 할 수도 있다. 그래서 어떤 일이 일어나는가? 교리를 알고 성경을 아는 만큼 더 골치 아픈 사람이 된다. 그런 것으로 자기 존재감을 부각시키려 하기 때문이다. “마음”이 치유되지 않으면 그런 사람에게 주어진 교리적 지식과 이해는 타인에게 고통이 된다. 
질문) 당신은 그런 사람을 보았는가? 혹시 당신은 그런 경향이 있지 않은가?

   3. 그렇다면 마음이 청결하다는 것은 무슨 뜻일까? 마음에 죄가 하나도 없는 상태를 말하는 것일까? 그럴 수는 없다. 그렇게 되면 주님이 하신 이 복의 말씀은 아무 의미가 없는 말이 되고 만다. 여기서 마음이 청결하다는 것은 절대적인 의미로 그러하다는 말일 수는 없다. 그 이유는 그렇게 되면 우리는 부활할 때 또는 영화롭게 될 때에나 그럴 텐데, 그렇다면 이 복은 죽기 전에는 누릴 수 없는 것이 되기 때문이다. 그러나 팔복의 복은 지금 여기서 누릴 수 있으며, 장차 충만한 형태로 누리게 되는 종류의 복이어야 한다. 그러면 마음이 청결하다는 것은 어떤 상태를 말하는 것일까? 그것은 팔복의 과정이 깊이 있게 진행됨으로 인해 변화되고 정돈된 마음의 상태를 말한다. 완벽하다는 의미에서의 청결이 아니라, 은혜로 더 깊어진 마음의 상태, 성화의 과정이 더 깊게 진행된 마음의 상태를 말한다. 자신에 대한 근거 없는 자부심을 비롯해 타인에 대한 속 좁은 편견이나 미움 같은 것을 내려놓고 긍휼히 여기기까지 된 그런 마음의 상태, 그런 상태에 이른 경우를 마음이 청결한 자라고 한 것이다.
질문) 당신의 마음은 어떠한가? 예수님을 믿고 당신은 성화되고 있는가? 당신에게 성화된다는 것은 이처럼 당신의 마음이 점점 맑아지고 청결하게 되는 것을 의미하는가? 당신에게 주로 문제가 되는 것은 당신의 마음인가, 아니면 다른 사람의 모습인가?

   4. 그렇다면 마음이 청결한 자가 하나님을 본다는 말은 어떤 뜻에서 하는 말일까? 살아가던 중에 이 육신의 눈으로 하나님을 볼 것이라는 말인가? 이 부분을 바르게 알기 위해 우리가 알아야 할 기본은 무엇일까? 창조주이신 하나님, 영이신 하나님을 우리가 눈으로 볼 수는 없다. 우리는 하나님을 보는 즉시 죽게 되어 있다. 죽여서 죽는 게 아니다. 그 차이가 우리에겐 너무나 큰 고통이 되기 때문이다. 그래서 하나님은 모세에게도 자신을 보여주지 않으셨다. 그러므로 팔복에서 “하나님을 본다”는 말은 “계신 그대로를 본다”는 말일 수는 없고 다른 어떤 것에 대한 “표현”일 가능성이 높다. 그렇다면 그게 무슨 말일까? 하나님을 뵙되, 계신 그대로를 본다는 뜻이 아니라, 보통 때는 상상할 수 없었던 만큼 하나님을 깊이 알게 된다는 말일 것이다. 사실 우리는 그런 때에 그렇게 말한다. 보통 때에 알던 것과는 차원이 다르게 하나님을 인식하게 된 경우, 우리는 “하나님을 만났다” “그분을 뵈었다”는 표현을 쓴다. 그 경험을 달리 말할 방법이 없기 때문이다. 욥기를 보면 욥도 그렇게 고백했다. “내가 주께 대하여 귀로 듣기만 하였사오나 이제는 눈으로 주를 뵈옵나이다”(욥 42:5).
   팔복에서 하나님을 볼 것이라고 한 것도 그런 뜻으로 보아야 한다. 주님은 우리가 팔복을 따라 마음이 청결해지면 이전에 상상도 할 수 없었던 방식으로 하나님을 아는 경험을 하게 될 것이라고 하신 것이다. 맨 먼저 우리의 진정한 상태를 자각하는 일이 일어나고, 그 결과 우리의 심령이 가난해지고, 자신의 죄와 죄의 결과들을 보며 애통하게 된다. 그리고 이런 일들이 자신에 대한 견해를 완전히 바꾸어 놓음으로써 마음이 온유하게 된다. 이런 과정을 거쳐 타인을 긍휼히 여기는 마음을 갖게 되는데, 이때부터 그는 자신이 하나님께로부터 말할 수 없는 긍휼을 입은 것을 깨닫기 시작한다. 남을 긍휼히 여기는 작은 시도를 통해 그는 더 깊은 긍휼을 체험하는 세계로 들어간다. 
   이때쯤 우리의 마음은 놀라울 정도로 맑아지고 깊어진다. 우리의 마음은 이런 이해로 채워지기 시작한다. 그때부터 우리는 긍휼히 여기는 일이 얼마나 엄청난 고통을 감당해야 하는 일인지를 깨달으면서 점점 하나님의 사랑에 눈을 뜬다. 그리고 그 눈은 점점 더 열려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보게 되고 그것을 통해 우리는 고백하게 되는 것이다. “주님! 이제 보입니다! 당신의 사랑과 인내가 ... 그리고 당신의 수고와 슬픔이 ...” 그렇게 되면서 주님이 빌립에게 하신 말씀 “나를 본 자는 아버지를 보았다!”는 말씀이 우리에게도 이루어진다.
질문) 당신에게도 이런 일이 일어나고 있는가? 당신에게 신앙생활은 이런 과정 중에 어딘가에 해당하고 있는 것인가? 아니면 지금까지의 당신의 신앙생활은 그저 “오늘도 예배 봤다!”는 수준인가? 당신의 신앙은 어떤 것이어야 하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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