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교적 제자의 조건 (요한복음 21장 15-17절)
2025년 5월 25일 주간목장교안
1. 예수님께서는 3년 동안 제자들과 이 땅에서의 시간을 함께 보내신 후에, 죽으시고 부활하셔서 40일 동안 제자들과 함께하셨다. 요한복음 21장은 예수님이 부활하신 후에 베드로와 함께하시며, 베드로에게 그가 예수님을 만나 따르기 시작하던 때부터 자신과 오랫동안 함께 해왔던 여정을 회상하게 하신다. 회상하게 하신 3가지 사건, 깊은 곳에 그물 던지는 사건, ‘옵사리온’ 물고기를 구워주신 사건, 숯불에 물고기를 구워주시는 사건을 중심으로 베드로의 경험을 통해 주님이 알게하신 것이 무엇인지 살펴보고자 한다.
첫 번째, 깊은 곳에 그물 던지는 사건으로 처음 예수님을 만난 때의 회상(눅 5)이다. 베드로가 다른 제자들과 함께 밤새도록 그물을 던졌지만 물고기를 잡지 못하고 아침에 그물을 정리할 때, 예수님이 나타나셔서 깊은 곳에 가서 그물을 던져 많은 물고기를 건지게 하신다. 이 사건은 누가복음 5장에서 베드로가 처음 예수님께 부르심을 받은 갈릴리 바다에서의 사건을 회상하게 한다. 두 번째, ‘옵사리온’ 물고기를 구워주신 사건으로 오병이어의 회상이다(요 6:1~15). 예수님께서 구워주신 물고기는 ‘옵사리온’이다. 베드로가 주님의 명령을 따라 건져올린 상품성 있는 ‘익투스’가 아니다. 어부들이 먹을 수도 있고 버릴 수도 있는 상품성 없는 ‘옵사리온’이다. 이 ‘옵사리온’은 오병이어 기적 때 한 어린아이가 가져왔던 물고기이기도 하다. ‘옵사리온’을 구워주시며 오병이어 사건을 떠올리게 하신다. 세 번째, 숯불 위에 물고기를 구워주시는 사건으로 불을 쬐며 예수님을 부인하는 회상이다(요 18:15~27). 세 경험을 회상하게 하신 후에 예수님께서는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 내 양을 먹이라(요 21:15~17).” 말씀하신다. 예수님께서는 왜 지난 시간들을 회상하게 하시고 베드로에게 말씀하신 것인가? 베드로에게 이 말씀이 어떻게 들렸겠는가? 예수님이 질문하신 의도는 무엇인가?
질문) 우리는 매주 말씀을 들으면서 말씀을 통해 질문을 받을 때 어떻게 말씀에 반응하는가? 주님의 부르심을 따라 매주 예배드리는 시간들을 떠올리며 주님이 우리에게 행하신 일들을 따라 말씀에 반응하는가, 혹은 지난 주님과의 관계는 잊은 채 그날의 말씀에만 반응하며 예수님과의 관계를 단회적인 관계처럼 여기며 반응하는가?
2. 베드로의 첫 번째 회상은 갈릴리 바다에서 예수님이 부르신 사건(눅 5장)이다. 베드로는 물고기를 잡을 때 처음 예수님을 만난 것이 아니다. 동생 안드레가 세례요한의 제자가 되어 예수님을 소개했을 때 처음 만났다. 그때, 예수님은 베드로를 보시고 “네가 요한의 아들 시몬이니 장차 게바라 하리라”라고 말씀하신다. 동생 안드레의 소개로 메시아를 만났지만, 베드로는 예수님을 따르지 않았다. 어쩌면 유대 민족 사이에서 공유되고 있던 메시아 사상에 걸맞는 메시아가 아니었기 때문에 실망하고 자신의 본업으로 돌아간 것이다. 베드로는 여느 때처럼 밤새 그물을 던졌지만, 허탕을 치고 아침에 그물을 씻고 있었다. 그때 예수님이 베드로에게 나타나 깊은 곳에 가서 그물을 던지라고 말씀하신다. 베드로는 “선생님, 밤새도록 수고하고 거둔 것이 없지만. 주님이 말씀하시니”라고 답변하고 깊은 곳에 가서 그물을 던진다. 도저히 물고기가 잡힐 수 없는 상황이었지만 순종하여 엄청나게 많은 물고기를 잡게 된다. 예수님께 베드로에게 깊은 곳에 가서 그물을 던져 많이 거두게 하신 이유가 무엇인가? 베드로가 인지하지 못하고 있던 잠재적 가능성이나 영웅적 면모를 일깨워주시기 위한 것인가? 아니면 베드로의 열정과 헌신을 보시고 비전이 대단한데 능력이 없으니 능력을 갖출 능력이 있는 주님을 따르라고 하신 것인가? 아니다. 예수님은 베드로를 하나님의 뜻을 따르는 사람이 되도록 사람을 낚는 어부로 부르셨다. 로마의 압제로부터 구원할 유대 사회에 만연했던 메시아가 아닌 베드로는 진짜 메시아를 만나, 하나님의 뜻을 이루시는 예수님을 경험한다. 예수님은 병자를 고치시고 기적을 일으키시고 하나님 나라를 선포하신다. 베드로에게 본 진짜 메시아는 어떤 분인가? 예수님께서 베드로를 부르신 목적은 무엇인가? 우리에게 예수님은 어떤 분인가? 우리 삶에 문제를 해결해 줄 메시아인가? 내가 알지 못하는 나의 비전을 일깨워 자격을 갖추어 대단한 일을 하게 하실 분이신가?
질문) 예수님께서 우리를 부르신 이유는 무엇이며, 우리에게 예수님은 누구이신가? 우리는 왜 예수님을 믿는가? 예수님이 우리를 부르신 목적을 따라 신앙생활을 하고 있는가?
3. 베드로의 두 번째 회상은 오병이어 사건(요 6:1~15)이다. 오병이어 사건 회상을 통해, 베드로는 예수님이 누구시며 자신이 무엇을 위해 부르심을 받았는지 다시 한 번 깨닫게 된다. 예수님은 자신을 따르는 무리에게 하나님 나라를 선포하시고 병자들을 고치셨다. 어느덧 저녁이 되었고 무리는 굶주린다. 제자들은 무리를 각자 집으로 돌려보내려 했지만,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먹을 것을 무리에게 나눠주라고 하신다. 그런데 무리의 숫자는 약 2만 명이었다. 제자들로서는 도저히 감당할 수 없는 숫자다. 그때, 한 어린아이의 오병이어가 등장한다. 예수님은 오병이어로 무리들을 먹이신다. 제자들을 손을 통해 오병이어가 전달된다. 이 과정에서 제자들은 놀라운 기적이 자신들의 손을 통해 이루어지고 있음을 경험하게 된다. 그리고 자신들의 손의 수고가 주님의 일에 무엇인가 도움이 되었다고 생각했다. 오병이어를 나눠주는 것이 특권인 것처럼 느꼈다. 예수님은 제자들의 모습을 보시고 얼른 건너편으로 떠나게 하시고 자신은 기도하러 가신다. 제자들은 배를 타고 갈릴리 호수를 지나 건너편으로 가려 하는데, 바람이 불어 건너지 못하게 되었다. 두려움에 싸인 제자들에게 예수님은 물 위로 걸어오신다(요 6:16~23). 그리고 베드로에게 물 위로 걸어오라고 명하신다. 베드로는 말씀에 의지하여 물 위를 걷는다. 하지만 두려움으로 물 위를 조금 걷다가 물에 빠지고 만다. 예수님께서 제자들의 손을 통해 오병이어가 전달되게 하신 것과 베드로로 물 위를 조금 걷게 하신 이유는 무엇인가? 바람 앞에 아무 힘도 없는 그들 자신을 발견하게 하신 것과 물 위를 걷다 물에 빠지게 하신 이유는 무엇인가? 주님의 뜻이 무엇인지를 알게 하시기 위함이다. 능력이 나타나는 것과 능력의 통로가 되는 제자들이 아니라, 주님의 뜻과 그 뜻을 나타내시는 능력이 주님께로부터 왔음을 가르치시기 위한 것이다. 오병이어의 기적도 물 위를 걸은 것도 모두 주님이 하신 것이다. 제자들은 그저 주님의 뜻을 이루는 통로였을 뿐이다. 예수님은 제자들과 함께하시면서 제자들의 연약함을 싸매시며 주님의 뜻이 무엇인지를 계속해서 가르치신 것이다. 그런데 왜 제자들은 자신들에게 공로가 있다고 생각했던 것인가? 그리고 왜 자신이 아무 공로 없음을 뒤늦게 깨닫게 된 것인가?
질문) 우리는 주님의 뜻보다 눈앞에 이루어지는 역사를 보고 역사 가운데 있는 우리를 주목한 적은 없는가? 주님의 뜻이 우리를 통해 이루어질 때, 우리가 주님의 뜻에 조금이라도 공로를 세웠다고 생각하는가? 이후 아무 공로 없음을 깨닫게 되었는가? 깨달았다면 왜 자신이 아무 공로 없다고 생각하게 되었는가?
4. 베드로의 세 번째 회상은 불을 쬐면서 예수님을 부인한 사건(요 18:15~27)이다.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에게 “너희는 나를 누구라 하느냐?(눅 9:20)”라고 물으신다. 베드로는 “주는 그리스도시오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이십니다”라고 답한다. 베드로는 주님이 알게 하셔서 주님이 누구신지는 알았지만, 주님의 뜻이 무엇인지는 알지 못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달려야 한다고 말씀하셨을 때, 말도 안되는 일이라고 반대했다. 그리고 주님이 십자가에 달리시지 않도록 자신이 지키겠다고 말한다. 이에 예수님은 베드로가 세 번 부인할 것이라고 말씀하신다. 실제로 베드로는 예수님을 세 번 부인한다. 예수님이 기드론 시내 건너편 동산에서 로마 병정들에게 잡혀가시고 베드로는 문 밖에 서서 문 지키는 여종의 말에 예수님을 첫 번째 부인하고(요 18:17), 날이 추워 종과 아랫사람들이 불을 쬐는 곳에서 두 번째 예수님을 부인하고(요 18:25), 대제사장의 종 하나의 말에 마지막으로 예수님을 부인한다(요 18:26-27). 예수님은 베드로에게 숯불 위에 물고기를 구워주시며 베드로가 부인한 사건을 회상하게 하셨다. 베드로와 예수님과의 지난 관계를 보며 어떤 생각이 드는가? 이제 다시 본문으로 돌아와 베드로가 부활하신 예수님을 만나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 내 양을 먹이라(요 21:15~17).”라는 말씀의 의미를 베드로가 어떻게 받아들였는지를 생각해보자. 베드로의 심정은 매우 복잡했을 것이다. 반가움과 함께 죄책감과 수치심이 가득했을 것이다. 베드로는 예수님을 다시 만나 깊은 곳에서 물고기를 건지고, 숯불에 피워놓은 물고기를 먹으며 주님을 마주한다. 예수님과 베드로와의 대화를 다시 한 번 살펴보자. 예수님은 세 번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라고 물으신다. 처음과 두 번째에 아가파오(아가페 사랑)로 물어보시고, 마지막은 베드로의 답변과 같이 필레오(우정, 호의적 사랑)로 물어보신다. 베드로의 답변은 겸손한 답변이다. 다 알지 못하지만 겸손히 주의 뜻을 따를 것이라고 필레오라고 답변한 것이다. 예수님이 제자를 부르심은 열정과 헌신을 가르치시기 위함이 아니라, 주님의 뜻을 가르치시기 위함이다. 예수님께서는 공생애 기간과 부활 후 40일 동안 주님의 뜻이 무엇인지를 알게 하신 것이다. 주님께서 우리에게 요구하시는 것은 무엇인가? 열정인가 헌신인가 전략인가? 예수님의 공생애 3년과 부활 후 40일을 모두 바쳐 베드로에게 깨닫게 하신 것은 무엇인가? 우리는 주님의 시선과 주님의 마음과 주님의 뜻을 깨달아가고 있는가?
질문) 예수님께서 베드로와 동행하시며 가르치신 ‘제자도’는 무엇인가? 신앙생활을 해오면서 주님이 나에게 가르치신 제자도는 무엇인가? 처음 믿은 후 나는 무엇이 달라졌는가? 열정과 헌신이 더 커졌는가? 주님의 뜻을 알기 위해 자신을 낮추고 있는가?
번호 | 제목 | 작성자 | 등록일 | 조회수 | 첨부 파일 |
---|---|---|---|---|---|
11 | 2025년 6월 8일 목장교안 | 평촌새순교회 | 2025-06-11 | 35 | |
10 | 2025년 6월 1일 목장교안 | 평촌새순교회 | 2025-06-04 | 27 | |
9 | 2025년 5월 25일 목장교안 | 평촌새순교회 | 2025-05-28 | 46 | |
8 | 2025년 5월 18일 목장교안 | 평촌새순교회 | 2025-05-21 | 76 | |
7 | 2025년 5월 11일 목장교안 | 평촌새순교회 | 2025-05-14 | 69 | |
6 | 2025년 5월 4일 목장교안 | 평촌새순교회 | 2025-05-07 | 74 | |
5 | 2025년 4월 27일 목장교안 | 평촌새순교회 | 2025-04-30 | 67 | |
4 | 2025년 4월 20일 목장교안 | 평촌새순교회 | 2025-04-23 | 77 | |
3 | 2025년 4월 13일 목장교안 | 평촌새순교회 | 2025-04-16 | 79 | |
2 | 2025년 3월 30일 목장교안 | 평촌새순교회 | 2025-04-02 | 111 | |
1 | 2025년 3월 23일 목장교안 1 | 평촌새순교회 | 2025-03-26 | 103 |
댓글